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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캇

위니캇의 대상관계 이론

위니캇은 정신분석에 입문하기 이전에 원래 소아과 의사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잘 노는 사람이었으며, 탁월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소아과 의사로서 엄마-아기의 관계를 가까이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던 경험은 훗날 자신의 성격발달이론을 형성하는 토대를 이루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와 멜라니 클라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나중에 그가 발전시킨 이론은 전혀 독자적인 것이었다. 그의 글은 비약이 심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도발적이며, 신비하기까지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관점은 마숫 칸과 크리스토퍼 볼라스 등의 오늘날 대상관계 이론을 주도하고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발달이론

  • 1

    의존

“(엄마 없는) 아기란 없다.”는 그의 유명한 경구에서처럼 유아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엄마-아기 관계의 한 부분이다. 유아는 신체적, 정서적 성장을 “촉진적 환경” 또는 “모성적 돌봄”에 의존한다. 그의 발달을 다음의 세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절대적 의존기(대략 6개월 이전): 모성적 돌봄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아무런 여과 없이 환경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이 때 적절한 환경의 결핍을 절대적 박탈(privation)이라고 불렀고, 절대적 박탈은 거짓자기 혹은 분열성 병리와 같은 정신병리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상대적 의존기(대략 6개월에서 2세): 유아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성적 돌봄의 내용을 의식하고 점점 자신의 개인적 충동과 관련시키게 되며 상호성이 발달되기 시작한다. 이후에 발생하는 환경의 결핍을 박탈(deprivation)이라고 하였고, 반사회적 병리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독립을 향해: 실제적 돌봄 없이 지낼 수 있는 기능을 발달시킨다. 완전한 독립이란 없다. 건강한 개인은 고립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방식으로 환경과 관련을 맺는다.

위니캇은 아이의 타고난 경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지는 않았으나 주로 한 아이가 건강한 인격으로 성숙하는데 필요한 환경적 요인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그의 정신병리 모델은 결핍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 2

    충분히 좋은 엄마

그러나 위니캇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환경이 아니며, “보통의 헌신적인 엄마”, “충분히 좋은 엄마”에 의해 제공되는 환경이다. 그에 따르면 보통의 헌신적인 엄마의 사랑은 아주 원초적인 것인데, 그 속에는 소유욕, 식욕이 있으며 심지어 ‘아이에 대한 저주’도 포함된다. 관용이나 겸손뿐만 아니라 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헌신적인 엄마는 자신의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이상화하는 데에는 감상주의가 깃들어 있는데, 이러한 감상주의는 미움에 대한 억압, 즉 자신 안의 어느 곳에선가 미워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적응과정의 일부로서 임신을 한 어머니는 점차 자신의 유아와 강한 동일시를 발달시키는데, 이러한 동일시는 해산할 즈음에 최고조에 이르며, 해산 후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위니캇은 이러한 특수한 심리적 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라고 하였다. 이는 심한 수준의 정신병리와 비견될 만한 일종의 병적인 상태로, 엄마로 하여금 적절하게 엄마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성 장애”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이러한 ‘정상적인 병’에 이르지 못한 엄마들이나 한 아이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으나 다른 아이에게는 그렇지 못한 엄마들이다. 둘째는 ‘아기에 대해 병리적으로 몰두하는’ 엄마로 아기로부터 분리 독립할 수 없거나 유아에 대한 몰두에서 몰두이전의 상태로 갑작스럽게 옮겨가는 엄마들이다.

  • 3

    통합

아기는 산만하게 흩어진 경험의 조각들과 파편들로 구성된 통합되지 않은 삶을 시작한다. 이 시기의 아기는 누군가가 담아줄 때에만 담겨 있을 수 있으며, 엄마의 안아주기(holding)에 의해 ‘존재의 연속성’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머니의 품이 좋아야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정감을 주고 고요한 것이어야 한다. 안아주기는 절대적 의존기 뿐만 아니라 이후의 아동기나 청소년, 성인기의 혼란이나 해체 불안이 있을 때는 언제나 필요하다.

안아주기는
생리적인 모욕으로부터 유아를 보호해준다.
유아의 피부 민감성, 체온, 청각, 시각, 떨어지는 느낌을 고려해야하며,
유아는 자기 이외의 그 어떤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모든 돌봄을 포함하며, 그 돌봄은 어떤 유아에게도 동일하지 않다.
또한 신체적, 심리적 성장과 발달에 속해 있는 매일 매일의 세미한 변화에 맞춘다.

충분히 좋은 엄마의 돌봄을 통해 환경에 대한 믿음을 확립할 수 있게 되면, 아기는 존재의 연속성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얼마 동안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훗날 성인이 휴식할 수 있는 능력, 즉, 보잘것없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있을 수 있으며,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의 전조이다. 위니캇은 이것을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불렀고 “정서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숙의 징표중의 하나”로 여겼다.
자아 통합이 충분히 좋은 환경에 의해 성취되는 것처럼 몸과 정신의 통전도 충분히 좋은 환경의 제공, 특히 유아의 몸 다루기(handling)에 달려있다. 위니캇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경기나 제대로 협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동작, 신체적, 성적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정신과적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이인감(depersonalization) 등과 같은 현상을 몸과 정신의 통전을 성취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 4

    전능환상과 원시적 대상관계

유아는 엄마-아기의 관계적 모체로부터 자아가 출현하게 된 후에 짧은 기간 동안 전능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유아는 구체화되지 않은 욕구에 기원을 둔 막연한 기대를 발달시킨다. 아이에게 온통 몰두해 있으며, 헌신되어 있는 엄마는 아기의 욕구에 부응해주기 위해 대상(젖가슴)을 제공해준다. 아기는 엄마가 제시한 바로 그 대상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고 엄마는 그 대상을 가져다준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아기는 대상과 실제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으며 그 것들은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위니캇은 이러한 전능환상이 무시되지 않고 충분히 지지될 때 주도적이고 창조적인 참자기의 요소가 발달된다고 보았다. 이시기의 유아에게 현실원리는 모욕이다. 현실 원리를 너무 빨리, 너무 한꺼번에 요구하게 되면 아이는 환상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하고 창조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엄마-아기의 상호작용에서 아기가 욕구 만족을 주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자신은 단지 그 욕구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가 젖을 먹고 싶다는 것을 알아도 아이에게 직접 젖을 물리지 않고 아이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젖가슴을 갖다 놓는다. 오히려 자아가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본능 경험에 노출될 때, 원본능 만족은 개인적인 자아의 연속성을 위협하는 유혹이며, 외상이 될 수도 있다. 엄마-아기 관계의 모체에서 자아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돌봄에서 중요한 점은 아기의 본능적 욕동을 충족이 아니라 아기가 대상을 발견하고 대상과 친숙하게 해주는 것이다.

  • 5

    침범과 상처

그러나 안아주기를 통해 적절한 자아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보호되지 않을 때, 유아는 환경으로부터, 또는 유아를 압도하는 충동이나 신체적 욕구에 의해서 침범을 당한다. 침범에 의해 존재의 연속성은 중단되고 아이는 해체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위니캇은 이러한 불안에 다음과 같은 느낌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1)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
2)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
3) 신체와의 관계성이 없는 느낌
4) 방향 감각이 없는 느낌
5) 의사소통할 수 없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느낌.

유아는 극심한 불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으로 방어한다.
1) 분열성 성격의 기초가 되는 자아 조직의 왜곡: 해리 또는 분열
2) 스스로 자신을 안아주는 방어: 거짓 자기의 조직화

위니캇은 첫 번째 범주에
1) 유아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2) 잠재적 정신분열증
3) 분열성 성격 등을 포함시켰다. 이들은 절대적 의존기에 환경이 지원해주지 못한 순간에 경험된 극심한 불안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조직화된 것이다.

  • 6

    거짓 자기와 참 자기

거짓 자기는 환경이 유아의 전능성에 적응해주지 못하고 유아가 오히려 환경에 적응할 때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거짓자기의 발달은 유아의 자발적인 몸짓(최초의 놀이)과 창조적인 생각(전능 환상)에 반응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무능력에 기인한다. 거짓자기를 발달시킨 사람은 창조적인 통각을 발달시키기 이전에 지각(눈치)을 발달시킨다. 극도로 불안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으며,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침범을 끌어 모으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의 행동은 방어와 반응으로 가득 차 있다. 진정한 자기감 없이 타인을 흉내내면서 삶이 실감나지 않고 허망하다고 느낀다.
한편, 위니캇에 따르면 거짓 자기는 현실에 대한 적응 능력이기도 하며 참 자기를 숨기고 보호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갖는다. 위니캇은 거짓자기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 극단적인 경우: 거짓자기는 진짜를 대신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전체 인격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임이 드러난다.
2) 덜 극단적인 경우: 거짓자기는 참자기를 방어한다. 참자기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인식되며 비밀스런 삶 속에서만 허용된다. 비정상적인 환경 조건에서 참자기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3) 건강을 향해 있는 경우: 거짓자기가 참자기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을 찾아주는데 관심을 갖는다. 그 조건을 발견할 수 없다면 참자기가 모욕을 받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방어를 조직하며, 만일 이러한 방어가 성공하지 못하면 자살을 기도할 수도 있다.
4) 보다 더 건강을 향해 있는 경우: 거짓 자기는 동일시 위에 세워진다.
5) 건강한 경우: 거짓자기는 사회적 환경에서 참자기를 가지고 적응하는 것을 돕는데, 이를테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 공손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나타난다.

  • 7

    대상관계에서 대상 사용으로

절대적 의존기의 유아에게는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구별이 없다. 이때의 대상은 자신이 창조하고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주관적 대상”으로 경험한다. 유아는 상대적 의존상태로 넘어가면서 “나”와 “나 아닌 것”은 분리되고 객관성을 성취하게 된다. 대상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지며 또한 대상들은 독립되어 있고 파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대상을 사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격성의 요소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위니캇은 프로이트나 멜라니 클라인과 같이 타고난 본능적 욕동으로서의 공격성을 가정지만 그가 가정하는 원초적인 공격성은 태아의 발길질에서 볼 수 있듯이 파괴성보다 활동성에 가깝다. 그것은 흥분 상태의 유아에게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 융합되어 있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유아의 사랑은 일종의 식욕에 가깝다. 유아는 공격성의 경험을 통해 현실과 만날 수 있는데, 실제 대상과 환상을 구분하는 방법은 공격성을 통해서이다. 아이는 환상 속에서 어떤 대상을 공격하거나 파괴함으로 그것이 사라지는지를 시험한다. 공격성에 의해 파괴되는 것은 환상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아이는 외부에 실재하는 대상을 발견할 수 있고 그 대상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때 부모는 기꺼이 공격성의 대상이 되어 주고, 공격성을 허용하면서 아기가 보이는 잔인함(ruthlessness)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성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공격성에 대해 보복하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보상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파괴성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만이 공격성을 억압하지 않고 인격 안에 통합시킬 수 있다. 공격성이 억압되면 파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거나, 참자기를 지키고 주장할 수 있는 건설적인 힘으로 사용될 수 없다.

  • 8

    중간 현상

아이들은 4-6개월부터 8-12개월 정도가 되면 잠들려고 할 때, 불안에 대한 특히 우울한 형태의 불안에 대한 방어로 부드러운 물건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을 중간현상이라고 불렀으며 이 때 사용하는 물건을 중간 대상이라고 불렀다.

중간대상은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다:
1) 유아는 대상에 대한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는 이에 동의한다.
2) 유아는 대상을 자애롭게 비벼대고, 열정적으로 사랑하기도 하며, 잔인한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3) 대상은 유아가 바꾸지 않는 한 결코 바뀌어서는 안 된다.
4) 대상은 본능적인 사랑과 증오에서 그리고 그것이 표현되는 공격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5) 대상은 유아에게 따스함을 주고, 움직이며 자체의 결을 지니고 있고, 그 나름의 생명력과 현실을 보여주는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6) 우리가 볼 때 대상이 바깥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아이의 시각에서는 그렇지 않다. 환각이 아니기 때문에 내면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다.
7) 유아는 서서히 그 대상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된다. 그것은 애도되는 것도 망각되는 것도 아니며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문화 영역 전반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중간대상은 유아가 현실을 인식하고 수용할 때, 주관성에서 객관성으로 이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고통을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중간영역에서 유아는 순응과 모방으로 자기를 배반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중간현상은 놀이로, 놀이에서 공동체 놀이로, 공동체 놀이에서 문화 경험으로 발달된다. 위니캇은 특히 아이의 놀이할 수 있는 능력에 많은 가능성을 두었다.

  • 9

    반사회적 경향성

위니캇은 “오줌싸기, 훔치기, 거짓말 하기, 공격적인 행위, 파괴적 행동과 충동적 잔인성, 성도착” 등과 같은 반사회적 경향성은 박탈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절대적 의존기에 자아 통합을 잘 성취하였다가 상대적 의존기 이후에 환경의 결핍을 경험한 아이들이다. 박탈은 다음의 두 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1) 상대적 의존기에 아이의 자아 욕구에 대한 엄마의 적응 상실(동생이 태어나거나 엄마가 아픈 경우). 대상들(사람들)과 접촉이 상실되는 형태이다.
2) 공격성에 대해 파괴되지 않고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환경의 상실(부부가 불화하거나 가정이 해체될 때). 아이는 통제를 떠맡게 된다.
박탈을 경험하는 아이는 말썽을 부리지 않고 순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무엇을 할 만큼 충분히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환경조건이 개선되면서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고 희망 안에서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된다.” 반사회적 행동은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사람들에게 시간, 관심, 돈 등을 요구하기(훔치기)
2) 통제(울타리)에 대한 기대(파괴적 행동)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1) 사랑과 신뢰성에 대한 아이의 권리 주장을 허용하는 것
2) 파괴되지 않는 튼튼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
만일 반사회적인 행동이 저질러지는 시기에 어떤 도움도 제공하지 않고 2차적 습득을 형성하게 되면(이를테면 범죄기술이나 범죄조직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영원히 치료하기 어려울 수 있다.

  • 10

    청소년기

청소년기에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격렬하게 제기되는데 위니캇에 따르면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 어려워진다.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자기 발견의 결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위니캇은 청소년기의 반사회적 행동의 원인을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생생한 느낌을 가지려는 시도로 보았다. 또한 이러한 청소년기의 미성숙으로부터 사회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이상주의가 나타난다고 믿었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미성숙은 인정되고 허용될 필요가 있다. “미성숙을 위한 유일한 치료는 시간이 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성숙으로서 인정되는 것이지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은 보복하거나 변론하지 않으면서 자체의 힘을 가지고 직면해주고 버텨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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