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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둔 유아의 운명
일산심리치료연구소 조회수:970 59.7.193.90
2018-04-26 11:10:36

어머니가 산후우울증에 걸린 유아에 대한 관찰 연구를 보면 인간과 접촉하려는 유아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느낄 수 있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표정 변화가 없고, 눈도 잘 맞추지 못하고, 반응이 느리고, 활력이 떨어진다. 앙드레 그린(Andre Green)은 이들을 ‘죽은 엄마’라고 불렀다. 이 엄마는 물리적으로는 아이와 함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부재하다. 

이 상황에서 아이 역시 긍정적인 정서 표현이 줄고, 풀이 죽고 축 쳐진 모습을 보인다. 이는 엄마의 반응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한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아이의 욕구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엄마가 마음으로 함께 있어주기 힘들 때 아이는 우울한 엄마를 동일시함으로써 엄마와의 심리적인 접촉을 유지한다. 이렇게 해서 엄마의 우울은 아이에게 들어온다.

치료 장면에서 순간적인 우울(micro depression)을 경험하는 내담자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만한 외부 사건이나 이유를 찾기가 힘든데 갑자기 정서적으로 ‘푹 꺼지거나 횡 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조용히 내면을 탐색해보게 하면 우울한 누군가(엄마)를 동일시하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어떤 기억이나 환상이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에게 아이가 보이는 두 번째 반응은 엄마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눈을 맞추려고 하고,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며 반응을 요구한다. 뭐라고 소리도 내고, 웃고, 익살스러운 몸짓도 하고. . . .

이런 내용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아이에게 아무런 표정도 반응도 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still face)’실험을 해보라.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고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행동을 다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아이의 행동이 이따금 성공한다는데 있다. 엄마는 가끔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이렇게 간헐적인 보상을 받는 행동은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어디 가서나 활력을 불어넣는 ‘재롱둥이’로 자라난다. 아이의 노력이 여러 곳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아이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고 활력을 불어넣는 데 전문가가 될 것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는 심리치료자가 되거나 자신의 이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생기 있게 만들려는 이러한 노력이 반복해서 실패로 돌아가면, 아이는 흥미 거리나 자극을 찾아 엄마에게서 떠난다. 이 때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를 포기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홀로 세상을 탐색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배경으로 존재한다. 아이의 행동은 어디엔가 배경으로 존재하는 엄마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아이의 외로운 활동은 역설적으로 엄마와의 유대를 유지하는 행동이 된다. 이 아이는 혼자만의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보존하는 사람, 외톨이로 자랄 수 있다. 

우울한 엄마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성은 아이에게 충분히 반응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를 과잉보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엄마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아기에게 반응하려고 하지만 여기에는 진정한 감정이 빠져 있다. 그 결과 엄마의 반응은 다소 과장되고 어색하다. 아이는 억지스러운 것과 자연스러운 것을 민감하게 구분한다. 하지만 생기 있는 상호작용을 열망하는 아이는 약간의 어색함을 무시한다. 이런 반응이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짜 엄마와 가짜 자기 사이에 거짓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산후우울증이 걸린 엄마와 아이의 상호작용에서 이러한 네 가지 양상이 두드러지게 관찰되지만 개별 사례에서는 어느 부분이 우세하게 나타날지는 미지수이다. 네 가지 양상 모두 안쓰럽고 가슴 아픈 것이지만 나의 마음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것은 단연코 첫 번째 이다. 아이는 엄마와 심리적으로 함께 있는 대가로 우울을 경험한다. 이것은 유아의 갈망이 빚어낸, 유아가 가진 뛰어난 공감능력이 불러일으킨 비극이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길 원하는 깊고 깊은 갈망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 조건이 가져다준 비극이다.


당신의 이름 모를 우울, 
당신의 근원적인 우울은
당신이 단 한 사람만을 알았을 때,
그 사람이 세상이고 전부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온통 몸과 마음을 주었을 때,
그래서 그 사람이 나 인지 내가 그 사람인지 분간조차 어려웠을 때,
그 때 비롯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거나,
곁에 있으면서도 마음으로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그 사람이 있는 곳에,
황량하고 음울한 그곳에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그 때 비롯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우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우울을 사랑하고 그것을 떠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우울은 그 사람과 당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울을 잃는 것은 그 사람을 잃는 것이요,
그 사람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우울과 슬픔은 이제 당신이 부르는 사랑의 연가, 
당신이 거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소금을 쏟아내는 바다 속 맷돌처럼
당신의 삶에 고통을 뿜어내는 멈추지 않는 심장이 되었습니다.

 

-김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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