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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밀어넣기, 마음 빼앗기 - 관계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폭력
일산심리치료연구소 조회수:1157 59.7.193.90
2018-04-26 10:48:30

인간관계에서의 폭력은 때로 은밀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물리적, 언어적 폭력만큼이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 하나는 마음 밀어 넣기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마술같은 일이 가능할까? 그러나 일상의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족내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평소 TV를 너무 자주 보고 게으른 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의식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느끼는 아들에게 떠넘긴다. 아들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그렇게 많이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버지가 고압적이고 처벌적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은밀하게, 더욱 더 컴퓨터 게임에 집착하면서 반항심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을 아들에게 밀어 넣는다. 

이러한 마음 밀어 넣기는 부부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정부 고위직에 근무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깊은 마음에는 늘 자신이 하잘 것 없고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의 아내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누가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여자였다. 다만 치열이 다소 고르지 못했다. 그는 이러한 아내의 신체적 약점에 지나치게 집착하였고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를 비난하였다. 아내는 이전에 이것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러한 공격을 받을 때면 마치 자신이 벌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여성으로서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을 떠넘긴 것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떠넘긴 사람은 그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이를 떠안게 된 사람은 부당한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를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밀어 넣기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그것은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원시적인 소통 기제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경험이나 불안을 어머니에게 떠넘긴다. 어머니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소화하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되돌려줌으로써 아이의 마음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마음 밀어 넣기는 치료 장면에서 치료자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치료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특히, 비온 같은 사람은 치료자가 환자의 무의식적인 떠넘기기를 적극적으로 담아줌으로써 환자가 감당할 수 없었던 문제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은밀한 폭력은 마음 빼앗기다. 이는 마음 떠넘기기와 반대되는 기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의 일부를 가로채는 것이다. 볼라스는 이를 “추출적 내사(extractive introjection)”라고 불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5살 된 아이가 물을 따르다가 엎지르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모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왜 조심하지 않는 거야!” 아이는 충격을 받아 얼이 빠져 있다. 부모는 말 그대로 아이에게서 ‘얼’을 빼앗았다. 부모는 아이가 당혹감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시간을 준다면, ‘이런, 당황했구나.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걸레로 닦아볼까.’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사태를 수습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이런 마음, 혹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대했다. 

아이가 공을 차고 있다. 운동장에 나선 아이는 스타플레이어가 된 것 같은 상상을 하며 드리볼도 하고 슈팅도 한다. 이 때 아버지가 끼어들어 공은 그렇게 차는 게 아니고 이렇게 차는 거라며 가르쳐 준다. 인사이드 킥은 이렇게, 인프론트 킥, 아웃사이드 킥은. . . 아이는 갑자기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아버지가 아이에게서 놀고 싶은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서 상상력을 빼앗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전능감을 빼앗고, 신나는 놀이를 지루한 훈련으로 대체시켰다. 아마도 즐거움과 환상 속에서 공차기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둔다면, 혹은 아이의 전능환상에 맞장구 쳐준다면(우와, 나이스 슛!) 아이는 이런 저런 실수를 하며 스스로 공차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부장은 회사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간부회의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방안을 내고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 개중에는 상당히 창조적인 해결책들이 개진되었다. 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김부장은 동료들이 내놓는 창조적인 제안에 은근히 시기심을 느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고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순간까지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독선적인 이야기로 말미암아 김부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모두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당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거나 침묵을 지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마음 빼앗기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는 그런 마음의 요소가 없는 것처럼 가정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식탁에서 아이를 꾸짖은 부모는 아이에게 당혹감이나 자기비판, 보상하려는 욕구가 없는 것처럼 가정했다. 놀이를 훈련으로 바꾼 아버지는 아이에게 주관적인 상상력, 전능감, 놀이의 즐거움이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 결과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그 순간 ‘그럴 마음’을 잃어버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성격구조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그러한 경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그런 아이는 부모에게서 아이에게 없다고 가정된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성격에 결함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첫 번째 예에서처럼 실수할 때마다 가혹한 비난을 듣고 자랐다면 그 아이는 죄책감이 갖는 건설적 기능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는 피해자를 동일시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보상하려고 하기보다는 가혹한 처벌을 기대할 것이다. 만일 놀이가 허용되지 않는 관계에서 자라났다면 그 아이에게 삶이란 해야 할 것, 혹은 성취해야 할 것들의 연속일 뿐, 즐겁고 누릴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상담실에서는 종종 이 마음 빼앗기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상담실을 찾아온 30대 주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으며, 또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가 겪고 있는 양육 문제는 지나치게 활동적인 아이들의 기질 탓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따뜻하고 민감한 양육을 받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에게서 심한 학대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항상 일방적이었고 대화가 허용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루어졌다고 했다. 최근에도 육아와 관련해서 일방적인 지시나 간섭이 많았다. 그녀는 상담자에게도 부모님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녀가 구하는 조언은 아이의 상태에 관한 전문적인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었고 “아이가 텔레비전 위에 올라갔는데 야단쳐야 되요?”라는 것과 같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기괴한 느낌까지 드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정상적으로 기대하는 성격의 일부가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결여된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느낌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스스로 느끼고 그 느낌에 기초하여 생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육아에 관한 조언이 아니라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이를 격려하고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였다. 그녀는 막막하고 두려운 느낌에서 상담을 시작하였지만 오랜 분투 끝에 결국 엄마로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 노릇을 어떻게 하는 건지 알겠어요.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또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보여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내 안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느낀다는 거지요. 내가 사랑을 느끼고 이것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코헛은 아이들에게 마치 자기(self)가 있는 것처럼 대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대하지 않는 한, 우리의 영혼은 성장할 수도 심지어 존재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내면적인 삶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마음 빼앗기야 말로 우리가 관계에서 가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폭력중의 하나이다.

-김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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